문재인의 식약처 vs. 트럼프의 F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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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 기자
(tyio@kormedi.com)


"하루 '살충제 계란' 126.9개를 먹어도 안전하다."

일주일 내내 전 국민을 패닉으로 몰아넣던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사태를 일단락하며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다. 교통방송(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를 진행하는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는 이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했다. "먹어도 안 죽어!" 정확하다. '살충제 계란' 때문에 일주일 내내 노심초사했던 국민에게 정부가 내놓은 메시지가 고작 이것이었다.

같은 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송구스럽다"고 국민을 상대로 사과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엇박자가 났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잠시 심호흡을 하고서 밖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한국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있다면 미국에는 그 유명한 식품의약국(FDA)이 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FDA 수장의 임명은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다. 공화당, 민주당의 정치 성향 또 대통령의 세계관이나 안목에 따라서 FDA 수장도 바뀐다. 때로는 인선 과정에서 잡음도 있다. 물론 불명예 퇴진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지키는 원칙이 있다. 이 중요한 자리를 '자격 없는 자(者)'에게 맡기는 경우는 없다.

오바마의 FDA

극과 극으로 대조적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9년 동안에도 세 명의 FDA 수장이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신임 FDA 국장으로 지명한 이는 마거릿 햄버그였다. 세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햄버그의 경력이 누가 봐도 FDA 국장의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햄버그는 애초 정부 연구소에서 에이즈 같은 전염병을 연구하던 과학자였다. 그렇다고, 실험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물 테러리즘 전문가로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뉴욕시 보건국장으로 일하면서 보건 행정, 규제 행정의 경험을 쌓았다. 과학자와 행정가를 두루 경험했다.

실제로 햄버그는 2009년 5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8년 가운데 6년간 FDA 수장 역할을 한다. 햄버그의 뒤를 이어서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짧게 FDA 국장을 역임한 로버트 칼리프도 자격만 놓고 보면 햄버그 못지않다. 칼리프는 1980년부터 2015년까지 듀크 대학교 의과 대학의 순환기내과 교수였다.

그냥 의과 대학 교수가 아니었다. 칼리프는 듀크 대학교에 임상연구센터를 만드는 등 임상, 연구, 행정을 꿰는 경력을 쌓았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2015년 1월에는 FDA 부국장으로 합류한다. 이 부국장 경험이 FDA의 업무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규제 행정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FDA 국장으로 취임했다.

트럼프의 FDA

그렇다면, 역대 최악의 미국 대통령으로 조롱받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FDA는 어떨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FDA 신임 국장으로 스콧 고틀리브를 지명했다. 전임 국장과 비교했을 때, 고틀리브의 경력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이미 조지 W. 부시 정부 때 FDA 부국장으로 재직한 경험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명 당시 그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을 비롯한 9개 제약 회사 또 의료 기기 기업의 이사회 멤버나 고문이었다. 제약 업계의 이너 서클 멤버였다. 당연히 이런 제약 산업과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이해 충돌의 우려가 제기되었다. (고틀리브의 전임자였던 오바마 정부의 칼리프 역시 다수의 제약 회사로부터 받은 연구비, 후원금 등이 문제가 되었다.)

사실 공화당과 기업 CEO 출신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상 FDA 수장이 친(親)기업 성향의 인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촛불이 낳은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 단체 출신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한 것처럼!) 이 대목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틀리브는 FDA 수장을 맡을 만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고틀리브는 FDA 국장에 임명되자마자 청문회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반대 목소리를 냈다. 대선 때부터 자폐증이 백신 탓이라고 수차례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대한 것이다. 그는 "현재까지 나온 연구 결과를 보면, 백신 접종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의 식약처

이제 다시 대한민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돌아가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2일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임명했다. 그는 30여 년간 부산대병원 앞에서 '파랑새약국'과 '지하철약국'을 부인과 함께 운영해 온 이른바 '동네 약국' 약사였다. (대학 병원 앞의 약국을 동네 약국이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성공한 약사로서 류영진 처장은 지역 정치 활동에 나섰다. 그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을 맺었다. 2012년 대선 때는 당시 문재인 후보 부산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지난 2016년 총선 때는 비례대표 20번에 공천이 됐다 낙선했다. 그러니까, 그는 성공한 약사 경력을 발판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는 '정치인 지망생'이었다.

물론 류영진 처장이 30여 년의 약사 경력을 쌓으면서 '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식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약만 알면 되는 자리가 아니다. 약뿐만 아니라 먹을거리, 화학 물질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꽂혀 있는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이라고들 얘기하는 생명공학 등 바이오 산업의 규제도 담당한다.

당연히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수장이나 직원은 독특한 역량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화학 물질의 유해성을 평가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것을 규제할지 말지 다양한 이해당사자(시민, 산업, 다른 국가 등)와 여러 맥락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수다.

이렇게 과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얽히는 현장이 바로 식품의약품안전처다. 오죽하면 이런 독특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식약처의 복잡한 업무를 '규제 과학(regulatory science)'이라고 따로 지칭할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지휘자가 바로 식약처장이다. 동네 약국 30여 년 경력의 약사가 과연 이런 지휘자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물론 류영진 처장 이전에도 한심한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많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둔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을 담당하는 식약처의 수장은 최소한 이전 정부보다 나아야 하지 않을까? 하다못해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 류영진 처장은 이미 한 달간의 경험을 통해서 식약처장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이쯤이면 자진 사퇴를 결정할 때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전에! 또 자신이 아끼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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