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아, 문제는 대한축구협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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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축구 명장은 어떤 사람일까. 하나의 축구팀이 승리하는 데 감독의 기여도는 과연 몇%나 될까. 일단 명장만 모셔올 수 있다면, 비록 3류 팀이라도 한순간에 우승이 가능한 것일까. 보통 축구에서 한 팀의 에너지는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시된다.

T(팀 에너지)=11×χ(감독 역량)+α(팬, 언론, 협회 지원…)

즉, 선수 11명 개개인의 힘은 감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1보다 커져 20도 될 수 있고, 그 보다 작은 5도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엔 팬이나 언론 등의 지원도 큰 힘이 된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 전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선수 11명의 힘을 묶어 그 총합이 11보다 더 큰 15~20을 만들어냈다. 선수들이 가진 각각의 능력을 150~200% 발휘하도록 만들었다. 히딩크가 질 수 있는 게임을 무승부로 만들고, 비길 수 있는 게임을 이기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러시아 월드컵 예선 막판에 물러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조차 100% 끌어내지 못했다. 기껏해야 11명의 총합보다 못한 7∼8명 정도나 발휘되었을까. 오죽하면 팬들이 그의 이름을 빗대 "슈팅0개"라고 비아냥댔을까.

바야흐로 '히딩크 논란'이 뜨겁다. 내용은 간단하다.

히딩크 감독(71)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진출한 한국 팀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명분과 실리가 없으며, 그 어떤 것(감독이든 기술고문이든)도 논의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신태용 감독과 본선까지 지휘봉을 맡기기로 계약이 끝났는데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히딩크 측과 대한축구협회 사이에 연락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의 진실 공방이 불거졌고, 그 이후 대한축구협회와 국내 축구인의 감정이 조금씩 격앙됐다. 그리고 작심한 듯 거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술이 휙휙 바뀌는 현대 축구에서 히딩크 스타일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구식이다."
"2010년 이후 히딩크가 여러 팀을 맡았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고령의 지도자가 15년 전의 리더십을 다시 보여 줄 수 있겠는가."
"흘러간 물로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엔 축구팬들이 폭발했다. 대한축구협회가 그동안 뭘 잘했다고 '명분이니 실리니' 따지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국내 축구인은 현대 축구 흐름에 얼마나 근접했느냐며 집중 성토했다. 전술 연구는커녕 기껏 한다는 게 대한축구협회 임원이라는 사람이 법인 카드 들고 골프장이나 유흥주점, 노래방 심지어 피부 미용실을 들락거리며 흥청망청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급기야 18일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 70.2%가 히딩크 감독을 어떤 방식으로든 내년 러시아 월드컵에 활용해야 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히딩크 단일 감독 22.0%, 히딩크 감독-신태용 수석코치 21.6%, 히딩크 기술고문 26.6%."

그렇다. 문제의 본질은 한국 축구의 경기력에 있다. 보나마나 한국팀 실력은 내년 러시아 월드컵 참가 32개국 가운데 거의 꼴찌권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예선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조마조마 아슬아슬 간당간당…. 가슴 졸이지 않은 경기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쩌다 운이 좋아 '본선 진출을 당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팬들 눈에는 조별 예선 3전 전패는 물론이고, 그것도 0-5, 0-7의 야구 스코어로 동네북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최소한 개망신은 당하지 않아야 될 텐데'라는 불안감에 휩싸인 것이다. 사실 지금의 한국 대표팀 수비진은 그냥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선전에서 아시아 팀들에게도 그렇게 뻥뻥 뚫렸는데, 유럽 남미의 세계 강호팀의 공격수에겐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다.

게다가 한국 축구는 옛날 '맨땅 축구 시절의 투쟁심'조차 사라졌다. 체력도 눈에 띄게 비실비실해졌다. 후반전으로 갈수록 발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당연히 2002 월드컵 때 선보였던 최전방 압박의 질식 수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끈질기고 끈적끈적한 맛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고질적인 뻥축구가 되살아났다. 패스와 볼 키핑력이 절망적이다. 민첩성과 볼에 대한 집착력도 마찬가지.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면 80% 넘게 빼앗긴다. 수비진의 맨 마킹, 상호 커버링(체인지 마킹), 스페이스 마킹은 그렇다 치더라도, 걷어내는 공조차도 빗맞아서 우리진영 페널티 언저리에 뜨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수비수 간의 패스는 늘 반 박자가 늦어, 상대 공격수의 먹잇감이 되곤 한다. 순간적으로 공격 전환할 때 찔러주는 패스도 '눈깜땡깜' 무디기 짝이 없다. 이래서는 질풍 같은 드리블의 손흥민 같은 선수도 어디 써먹을 데가 없다. 정교한 세트 플레이야 더 기대할 것도 없다.

현대 축구의 속도전은 빠른 패스가 기본이다. 포백의 중앙 수비수가 중요한 것도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송곳 같은 패스 능력이다. 상대 수비가 전열을 갖추기 전에 얼마나 빨리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느냐가 포인트다. 그러나 한국 선수에겐 축구의 가장 기본인 트래핑과 패스워크가 한참 부족하다.

돌이켜보면 한국 축구는 누가 뭐래도 2002 한일 월드컵 때가 최고였다.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태극 전사들을 보는 것만도 자랑스러웠다. 선수 감독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타는 목마름으로' 간절하게 16강을 꿈꿨고, 그 꿈은 8강을 지나 4강에 이르렀다. 그 유산을 잘 이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반짝'하며 16강에 오른 이후로 급전 직하했다. 2002 월드컵 땐 그래도 15명 정도는 수준급 엔트리 멤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1명 중 7, 8명도 제대로 꾸리기 힘들다. 좌우윙백 같은 경우는 이영표 송중국 차두리 이후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오죽하면 슈틸리케 감독이 돌려막기식으로 임시변통을 해야 했을까. 내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주전이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그 뒤를 받쳐줄 이렇다 할 벤치 멤버가 각 포지션마다 1명씩은 돼야 하는데 그게 거의 없다. 한마디로 한국 축구는 2002년 4강 신화에 취해 신인 발굴에 손 놓고 있었다. 직무유기다. 그동안 곶감 빼먹듯 놀고먹고 지내온 당연한 업보인 것이다.

현재 한국 축구는 아시아 중상위권으로 떨어졌다. 어쩌다 공을 넣어도 '우왕좌왕하다가 억지로 우겨넣는 식'이다. 조중연, 이회택, 김주성, 황보관 등 한 때 한국 축구 레전드였던 축구협회 임원들이 거들먹거리며 유흥주점이나 골프장에 들락거릴 때, 한국 축구도 서서히 골병에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처지다. 히딩크는 분명 옛날만큼은 못하지만 그의 경험과 리더십은 돈 주고도 못 살 값진 것이다. 더욱이 뭔가 흐물흐물 매가리가 없는 대표 팀에 충격과 새바람이 필요하다. 게다가 축구팬들의 히딩크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큰 힘이 된다.

히딩크는 사실 굳이 감독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상징적인 연봉 1달러'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축구에 그만큼 애정이 깊다는 뜻이다. 신태용 감독 체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날 일이 하나도 없다. 더구나 신 감독은 월드컵 준비 과정의 경험이 전혀 없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기술고문이든 뭐든 그게 뭐 그리 축구협회의 '실리와 명분을 잃는 것'일까. 정작 명분과 실리를 잃은 건 축구협회 임원들이 1년여 동안 골프장(133회 5200만 원), 유흥주점(30회 2300만 원), 피부미용실(26회 1000만 원), 노래방(11회 167만 원)에 출입했던 것 아닌가.

한국 축구가 불안할 땐 늘 되풀이 되는 패턴이 있다. 과거의 잘못된 사례를 판에 박은 듯이 답습한다는 것이다. 그 중심엔 어김없이 옹졸하고 완고한 축구협회가 있다. 백년대계는커녕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하마터면 월드컵 진출 실패라는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지만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더 뻣뻣하다. 요즘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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