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 병원에서 환자 자살하면 병원은 책임 있을까?

[서상수의 의료&법] 정신 병원 환자의 추락사와 의료진의 형사 책임

요양병원에서 머무르는 노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환자 A 씨는 파킨슨병과 치매 증상으로 요양병원 집중치료실에 입원 치료 중이었다. A 씨는 우울증도 있었고 두 달 전부터 불안 증세와 초조함을 호소하면서 종종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죽고 싶다는 말도 자주 했다.

진짜 죽음을 택해버렸다. 병원 의료진이 교대 업무 시간에 방심한 사이, 혼자 병상에서 나와 병원 5층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 병원 5층 창문은 잠금장치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일부러 몸을 밀어 넣지 않는 이상 추락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병원 운영자가 창문에 잠금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것과 의료진이 A를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죄를 물을 수가 있을까? 병원 측의 주의 의무가 명확히 규정되고 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인정돼야 병원 운영자와 의료진의 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1심 판결은 무죄였다. 판사는 “의료 행위에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한 주의 의무의 판단 기준은 민사적 책임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 기준보다 더욱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판결에서 의료진의 주의 의무는 의료 행위를 할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 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의사의 의료 행위가 당시 의료 수준에 비추어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되면 의사에게 주의 의무 위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원용했다. 판사는 또 의학적으로 A 씨가 자살할 것이라 예견하기는 어려워 보이므로 병원 운영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도 1심 무죄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결해 무죄로 확정됐다. 특히 항소심에서는 A가 추락한 창문이 일부러 과도하게 몸을 밀어 넣지 않는 이상 추락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도 중시됐다. 법원은 환자의 돌발 행동을 완벽하게 대비할 시설과 인력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피고인들에게 사건 사고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뿐만 아니라 회피 가능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법원 판단에 대해, 의료 행위와 관련된 의무를 판단할 때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의무를 요구할 수는 없으므로 실현 가능성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에 따라 암과 심뇌혈관질환, 치매, 파킨슨병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고령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각종 사고에 대한 면죄부로 오인될까 우려가 된다.

우선, 상식의 영역이 아니라, 법의 영역이라면 임상 현장의 개별 사정에 따라 주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규범적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법원은 특정 상황에 따라서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 상황이 책임을 면하는 ‘책임조각사유’가 될지 판단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이 사건 판결과 같이 환자의 고의적인 자해 행위나 환자가 자초한 위난에 대해 법원이 의료기관의 책임을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하는 점에 대해서도 그것이 정말로 당연한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입원 환자는 치료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로부터 보호에 관하여도 상당 부분 의료 기관에 위탁되는 것이므로 환자에 대한 의료 기관의 보호 의무를 제한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본다. 환자의 고의 행위에 의한 사고라도 의료 기관의 책임 제한에 신중을 기해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노화에 따른 질병과 정신적 문제를 남의 일로 여기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또, 의료진에게 가족을 맡기는 데에는 자살 충동이나 폭력적 성향을 방지하는 것을 도와 달라는 염원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많은 의료진이 이런 점들을 고려해 환자를 정성껏 돌봐 위기를 넘겨 가족에게 보내고 있다.

물론, 의료 기관의 보호 의무 강화는 필연적으로 의료 비용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비롯한 사회복지제도의 형태로 국민이 기꺼이 분담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하건대, 요양 병원이나 정신병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리는, 이상한 세계가 아니다. 자신이나 가족이 언젠가 심신을 맡겨야 하는, 병원의 한 형태일 뿐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취약한 고객’의 안전을 최대한 강조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법원 판결에서 이러한 점을 고려하라는 것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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