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간병’하는 엄마들

[김용의 헬스엔]

중증 장애인의 돌봄을 가족 위주에서 지역사회의 시스템으로 끌어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게티이미지]

“제가 세상을 떠나면 누가 이 일을 할까요? 자식보다 오래 살아야 하나요?”

목에 캐뉼라(튜브)를 꽂아야 숨을 쉬는 중증 장애인의 엄마 A씨는 이제 눈물도 말랐다.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간병’을 해온 그는 주위의 무관심, 아니 냉대와도 싸워야 한다. A씨는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아들의 캐뉼라가 갑자기 빠지면 응급 상황이다. 이 때 법을 준수하면 엄마는 도울 수 없다. 의료법에 면허를 가진 의료인만 캐뉼라를 다룰 자격이 있다. 법을 지키자고 죽어가는 자식을 내버려 둘 것인가. 한시가 급하기 때문에 가족이 대신해주는 게 흔하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의료법을 어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위루관(뱃줄)으로 음식을 공급받는 중증 장애인의 가족도 상황은 비슷하다. 배에 위루관을 삽입한 자녀를 둔 엄마는 점심시간마다 학교로 가 위루관을 교체한다. 학교에선 의료법을 의식해 교체해 줄 사람이 없다. 엄마가 주위의 눈치를 보며 직접 자녀를 살펴야 한다. 실수로 위루관이 빠졌을 때 전문병원을 찾는 데만 반나절이 걸리기도 했다. 아이가 배고파 하는 것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린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하는 위루관은 25만원 가량이나 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될 때는 2만5000원 정도였지만 비급여로 전환되면서 비용이 크게 늘었다.

환자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간병은 너무 고통스럽다. 요양병원은 치매 환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신이 멀쩡하지만 뇌졸중(뇌경색-뇌출혈)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40~60대 환자도 꽤 있다. 모두 집에서는 간병이 힘들어 마지못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쪽 몸이 마비된 사람의 간병도 힘든데 목에 튜브를 꽂고 숨을 쉬는 중증 장애인을 시중드는 것은 오죽할까? 자녀가 태어날 때부터 평생 간병하는 엄마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적절한 사례는 아니지만 지난달 수원 모녀 사건이 기억난다. 암 투병 중인 60대 엄마가 희소 난치병 환자인 30대 두 딸을 돌보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은 남편과 장남의 잇단 사망 이후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엄마의 잘못된 선택을 탓하기 전에 ‘돈이 없어 힘들다’ ‘몸이 너무 아프다’는 내용이 담긴 메모는 마음을 짓누른다. 세 모녀는 특별한 생계 수단 없이 온 가족이 암과 난치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해왔다. 오랜 기간 삶이 피폐했던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자신의 암과 싸우면서도 하루에도 몇 시간이나 경련을 하는 중병의 큰딸을 돌봐야 했다.

중증 장애인의 의료·돌봄을 언제까지 가족이 온전히 떠안아야 할까?… 중증 장애인이 태어나면 엄마가 평생 24시간 간병을 해야 할까? 장애인 부모는 “내가 더 오래 살아아지…”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나…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장애인 관련 돌봄 정책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미국, 유럽에서 잠시 살다가 귀국한 장애인 가족들은 한국의 열악한 현실에 좌절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단체의 회원들은 평생 아픈 자식을 안고 사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가족 일변도의 장애인 돌봄에 다소 숨통이 트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이 의지하는 보조기구, 의료 소모품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 지역사회에 긴급 돌봄센터 설치 등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활동지원사에게 석션(압력으로 가래를 빼내는 행위)과 위루관 교체 등 의료행위를 일부 허용하라는 현실적인 주장도 펴고 있다. 이미 영국이나 일본은 활동지원사가 의료 교육을 받으며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 이상 장애인 엄마의 끝없는 희생을 무신경하게 바라봐선 안 된다. 왜 그들이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아이의 위루관을 바꿔줘야 하는가. 아무도 돕지 않는 세상 앞에서 엄마는 좌절한다. 내 몸이 지쳐서가 아니라 주위의 차가운 시선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한다.

이제 중증 장애인의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지역사회의 시스템 내로 끌어 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낸 세금을 더 따뜻하게 써야 한다.

최근 발달장애인들이 늘고 있다. 건강했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중증 장애인이 된 사람도 많다. 내 가족 중에도 장애인이 생길 수 있다. 그제야 우리나라 장애인 돌봄 정책의 수준에 좌절할 것인가. 국회,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더 늦게 전에 중증 장애인의 의료·돌봄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해서 장애인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우리 모두가 중증 장애인과 그 부모들을 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 돌봄 정책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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