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가 안 괜찮은 이유

[채규만의 마음이야기] 이태원 트라우마 대처법 (2)

선의의 위로라도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적 기제를 알아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살아가는 도중 각종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지난주 칼럼에서 제시했듯이, 트라우마는 심리적, 신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건을 말한다. 사소하게는 코로나 감염, 길거리에서 개에게 공격 당하기, 언어폭력에 의한 인종 차별, 밤길에서 괴한 공격, 도둑 침범 등이 있을 수 있다. 심하게는 예기치 않은 암 선고, 심각한 자동차 사고, 길거리에서 묻지 마 폭행, 가까운 사람의 죽음, 폭우에 의한 집의 침수, 토네이도 같은 천재지변 등 다양하다.

트라우마는 주관적 경험이 중요하기에, 사람에 따라서 스트레스 정도는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그 경험 때문에 수면장애나 집중력 저하 등을 느낄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지간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가볍게 털고 일어서기도 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만나면 안타까움에 생존자를 위해서 위로하려고 순간적으로 반응한다. 이런 반응이 트라우마 경험자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거나, 오히려 심리적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선의의 위로라도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적 기제를 알아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과 행동

▸그러니까 내가 평소에 조심하라고 했잖아 : 트라우마 경험한 사람에게 생존자를 탓하는 말은 최악이다. 어머니는 자녀가 좋지 않은 일이 당하면 속상한 나머지 자녀를 야단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늦게 귀가해서 성폭행이나 사고를 당한 딸에게, “엄마가 항상 일찍 귀가하고 밤길 조심하라고 했잖아! 엄마 말 안 들어서 사고를 당했잖아!” 심지어는 “너 사고를 당해도 싸다!” 이런 말은 생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언어 폭력이다. 생존자가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취약한 순간에 속상한 마음을 비난하는 말투를 표현해서는 절대 안 된다.

▸괜찮아, 이제 그 사건에 관한 생각은 잊어버려, 곧 좋아질 거야! : 생존자를 위로하는 가장 흔한 말이 “이제 괜찮아. 모든 것 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면 좋아질 거야”다.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생존자는 불안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후유증을 앓고 있기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결코 괜찮지 않다. 이런 조언은 생존자에게는 “내 속 마음을 너무나 몰라준다”로 해석된다. 겉으로는 “위로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속으로는 “나 괜찮지 않아요. 나 힘들어요. 당신이 나 같이 당한 적이 있어!”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이 정도 피해는 불행 중 다행이야 안심해요: “불행 중 다행이다. 죽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말은 어느 정도 위로는 될 수도 있다. 생존자가 “왜 하필 나에게 이러한 재앙이 닥쳤나”라며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고, 힘들고 절망적이라면 별로 도움이 안된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고 이러한 감정이 정상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 안심이 되고 도움이 된다. 생존자의 감정을 보살피고 공감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나도 이런 일을 당했었는데 어쩌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려. 괜찮아질 거야 ; 트라우마 경험을 나누면서 극복기를 말해주는 사람은 생존자의 처지에서는 ‘정말 얄미운 사람’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신이 말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사람을 생존자는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의 극복기를 들었을 때 생존자는 “그래, 어쨌다는 거야! 내가 당신이야! 나에게 자랑하는 거야!”라는 반발감을 가질 수도 있다.

▸당신은 강하니까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거야 안심해 : 이런 위로 역시 생존자의 감정을 반영해 주고 지지하는 말이 아니다. 제 3자의 문제 해결 중심의 제안일 뿐이다. 트라우마 직후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생존자는 “나는 현재 강하지 않아요. 나 힘들어요” 하면서 울고 있다.

▸너무 강한 감정을 드러내는 동정적인 말과 행동 : 어떤 방문자는 트라우마 생존자가 입원한 병동을 찾아 “아이고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어? 내 가슴이 미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네!”라며 울기도 한다. 생존자에 대해 동정을 베푸는 말과 행동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존자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로 인해 힘들어하는데, 문병 온 사람이 힘들어하면 “내가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나?”, 또는 “내가 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네.”라는 생각에 더 힘들어한다. 때로는 생존자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위로자가 울고 가면 감정이 혼란스러워져 더욱 힘들어 한다. 방문자는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정을 참을 수 없어 눈물이 난다면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

▸생존자를 공감하고 수용하는 말과 행동: 예를 들면 “많이 힘들지요. 정말 너무나 많이 놀라시고 무서웠을 것 같아요” 또는 “이 사건으로 너무나 당황하고 두려웠을 것 같아요” 라는 말로 생존자의 현재 감정을 반영해줘야 한다. 생존자의 감정을 어떻게 반영해 줘야 할지 모른다면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셔요?” 등으로 접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안정된 분위기에서 생존자가 편안하게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 : 생존자를 도와주려고 사건에 관해서 너무 자세히 물어보면서 트라우마 사건을 재경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위로주려고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어? 자세히 말해봐!” 라며 피해 상황을 억지로 말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생존자가 자발적으로 말하지 않는 한 너무 자세히 사건에 관해서 물어 주어서는 안 된다. “혹시 이번 사건에 관해서 나누고 싶으면 제가 들어 드릴게요.”라면서 생존자가 원하는 만큼,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수용해 주는 것이 좋다.

▸트라우마 사건을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질문 : 예컨대, “이 사건을 어떻게 대처하고 계시는가요? 이 사건이 자신에게 어떤 면에서 영향을 주고 있나요? 그러한 방법이 도움이 되거나 효과적인가요? ” 등의 질문으로 생존자가 트라우마에 관한 자신의 대처 방법을 돌아볼 수 있도록 질문을 해도 도움이 된다.

▸트라우마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이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안심시키기 : 사람의 뇌는 증상에서 회복하기 위해서 그 장면을 떠올리고 깜짝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트라우마 장면 회피하려고 하기도 하고 악몽을 꾸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을 호소하면 회복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말 주는 게 좋다.

▸자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행동이나 트라우마 상담을 안내 :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뉴스나 TV, 정보를 통해서 또다시 트라우마 증상이 촉발되면 순간적으로 이 증상을 알아차리고 안정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면 많은 도움이 된다.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천천히 심호흡하기, 자신이 처해 있는 물리적 공간을 오감을 통해 알아차리기, 주의를 분산시키는 음악이나 산책하기’ 등을 알려주면 도움이 된다. 혹시 다른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 달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트라우마 증상이 심하면 전문 상담을 받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다.

주위에서 각종 재난이나 사건으로 인해서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생존자가 있으면 이들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방법을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 위로나 격려가 좋은 동기에서 나오더라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역효과가 나고 마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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