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료·K-방역 씨 뿌린 선각자

[오늘의 인물] 올리버 에비슨

윤동섭 연세의료원장이 1일 ‘에비슨 동상 사진전’의 기록사진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연세의료원]
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에서 에비슨 동상 사진 전시회(오늘도 우리와 함께)’가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 서양 의학의 씨를 뿌린 선각자, 올리버 에비슨(Oliver R. Avison) 박사의 내한 130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동상에 대한 자료들을 5월 말까지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전시회다.

에비슨은 1860년 영국 요크셔 출신으로 가족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했으며 토론토 약학교와 토론토 의대를 졸업한 수재였다. 교수로 재직하며 시장의 주치의를 맡을 정도로 이름을 떨쳤는데, 선교모임에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를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다. 언더우드 박사가 미지의 나라 조선에 대한 선교 봉사 제안을 하자, 에비슨은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고 가족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는 배에 몸을 싣는다.

올리버 에비슨(Oliver R. Avison) 박사

에비슨은 조선에 도착한 지 얼마 뒤 고종의 피부병을 치료한다. 고종은 의비신(宜丕信) 대인이라 부르며 어필을 내렸고 제중원을 맡기며 자신의 주치의로 삼았다. 에비슨이 지금 애비슨, 에이비슨 등으로 불리는 것처럼 당시 의비신 또는 어비신(魚飛信)으로 불렸다.

에비슨은 조선 정부가 제중원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하자 사임이라는 강수를 두며 협상해서, 제중원을 조선 정부와 미국 선교부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그는 1895년 콜레라가 유행하자, 조선 최초의 방역 대책위원장을 맡아 병에 대한 계몽과 방역활동을 펼쳤다. 에비슨은 1899년 안식년에 캐나다로 되돌아갔다가 이듬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에서 한국 의료선교 후원을 호소했고, 클리블랜드 부호인 루이 세브란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1904년 조선 최초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기념 병원’을 짓는다.

그는 병원에 제중원 의학교를 설립하고 1908년 백정 출신 박서양을 비롯, 첫 조선인 의사 7명을 배출한다. 에비슨은 언더우드의 뒤를 이어 연희전문학교의 전신 조선기독교학교의 교장을 맡기도 했고 1935년 선교를 은퇴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 조선 독립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고종이 하사한 어필은 “投良濟堯帝時巫咸”(투량제요제시무함) “좋은 약을 짓는 것이 요나라 황제 때의 (명의) 무함이구나!”라고 돼 있다. 에비슨은 환자 치료에 그치지 않고 조선과 대한민국의 치료에까지 힘쓴 명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관련 기사: 에비슨 내한 130주년 전시회 개최(포털사이트에서 클릭해도 기사가 안 보이면 ‘기사 원문’ 보기로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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